연출은 무겁기가 태산 같아야 하고
배우는 노닐기를 바람같이 해야하며
무대 장인들은 태산과 바람을 아우르는
공기와 같아야 한다.
오늘 바람이 흔들리니
태산이 요동친다.
태산과 바람에 어울려
공기는 질풍노도를 일으키며
한 시대를 가른다.
-영락공원 발인지에서
걸어온 길
1985년
6월 4일 부산 가톨릭대학교(전 지산간전) 간호학과 2학년 휴학과 함께 정단원 입단
1985년
세태풍자극 「시절 한 번 좋구나」 (소극장두레마당 개관공연)
1986년
「맹진사댁 경사」(부산구덕실내체육관)
1987년
한국문학 재해석 「새허생이야기」(소극장두레마당)
어린이들을 위한 연극 「청개구리는 날이 궂으면 왜 우는가.」(태화쇼핑 이벤트홀)
1988년
극단「두레」를 극단「새벽」으로 명칭 변경
광주항쟁 재현극 「5월 별신굿」(소극장두레마당)
1989년
참교육과 교단 민주화를 위한 공연 「수/우/미/양/가」(소극장두레마당), 창단 5주년 행사
1990년
섬유산업 노동자들을 위한 연극 「다시 서는 사람들」,
언론민주화와 언론노동자들을 위한 공연 「나랏님 말싸미」(소극장두레마당)
1991년
현실 상황극 「지금·이곳-」(민족굿터'신명천지')
1992년
우끼시마호 폭침 사건 추적극 「폭침-우끼시마호는 부산항으로 못간다」(예술극장 한마당 -서울, 민들레소극장-광주, 부산 시민회관)
1993년
「아이꼬의 노래」(가마골소극장)
1994년
갑오농민항재 100주년 기념공연「새야 매야」(서울문예회관/일본쿄도,고베,오사카 3개지역순회) - 창단 10주년 행사
1995년
원폭피해자들을 위한 공연 「히바쿠샤」,「새 허생이야기」(소극장실천무대)
민가협 어머니들을 위한 공연 「어머니」(경성대콘서트홀)
「제1회 아시아연극인페스티발」(서울· 부산 동시 개최/서울-동숭아트센터, 부산-경성대 콘써트홀) 기획
1996년
이땅의 어머니와 딸들을 위한 공연, 윤명숙 일인극 「어머니 날 낳으시고...」(소극장실천무대)
1997년
세태풍자극「아닌 밤중에」(소극장실천무대)
「제2회 아시아연극인페스티발」기획 (부산문화회관, 경성대 콘써트홀, 태양아트홀, 소극장실천무대)
철거민과 달동네 사람들을 위한 공연, 노래가 있는 연극「달과 곱추」(소극장실천무대)
1998년
여성들을 위한「생과부 위자료 청구소송」, 현실상황극「이의 있습니다」(소극장실천무대)
분단 이산 가족을 위한 공연「어느 골짜기에 관한 논쟁」(부산 경성대 콘써트홀)
「98 메이데이문화제」참가
1999년
해고노동자들을 위한 「3인 특별위원」
「99 메이데이문화제」 참가
「제3회 아시아연극인페스티발」 참가 (일본 야마구치현 하구루마좌 예술회관) - 창단 15주년 행사
「어느 골짜기에 관한 논쟁」 (소극장실천무대)
2000년
「2000메이데이문화제」 참가
윤명숙 1인극 「어머니 날 낳으시고...」 (소극장실천무대 / 아시아문예센터 설립발기인모집 홍보공연1)
「어느 골짜기에 관한 논쟁」 (문주공원 중극장) - 「제13회민족극한마당」 참가작
2001년
아들 어진이를 위한 장기 휴가
2007년
6월 27일 오후 7시 운명을 달리 함
공연 앨범
3인 특별위원회
3인 특별위원회
극단 하구루마좌 초청 극단새벽 방법론 연기 지도
극단 하구루마좌 초청 극단새벽 방법론 연기 지도
극단 하구루마좌 초청 극단새벽 방법론 연기 지도
극단 하구루마좌(일본) 신년회 초청공연
극단 하구루마좌(일본) 신년회 초청공연
극단 하구루마좌(일본) 신년회 초청공연
나가노-아시아 1인극제초청작 일인춤극 '오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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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노-아시아 1인극제초청작 일인춤극 '오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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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님말싸미
나랏님말싸미
나랏님말싸미2
새야매야
새야매야
새야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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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허생 이야기
새허생 이야기
새허생 이야기
새허생 이야기
새허생 이야기
새허생 이야기
생과부 위자료 청구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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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과부 위자료 청구소송
생과부 위자료 청구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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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꼬의 노래
아이꼬의 노래
아이꼬의 노래
어느 골짜기에 관한 논쟁
어느 골짜기에 관한 논쟁
어느 골짜기에 관한 논쟁
어느 골짜기에 관한 논쟁
어느 골짜기에 관한 논쟁
어머니 날 낳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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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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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ZENKO대회 초청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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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문예패 '교토 한마당'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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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침, 우끼시마호는 부산항으로 못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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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침, 우끼시마호는 부산항으로 못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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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바쿠샤
히바쿠샤
히바쿠샤
히바쿠샤
영상 자료
배우 윤명숙! 별것도 아닌 말장난에 허리를 꺾어가며 자지러지게 웃어 제키다 문득, ‘우리... 왜 살지?’라며 뜬금없이 뱉어놓고 바라보면 어느새 눈길은 빌딩 너머로 가라앉는 해를 향해 있곤 했다. 여름 바닷가 포장마차 카바이트 불빛과 냉장고에서 막 꺼낸 차가운 소주와 담치 국물을 좋아하던 21살 나이에 극단새벽 막내로 입단했다. 희망보다 좌절을 먼저 배웠고 절망 속에서도 웃을 줄 아는 법을 터득해야 했던 나날들, 온 몸을 따갑게 싸고도는 최루탄 연기 아래서 공포와 분노를 감당 못해 울부짖으며 ‘독재타도’를 외치던 80년대를 거쳐 가난한 연극쟁이 더는 못 견디겠다고 하나둘 떠난 자리 아프고 저미게 메꾸며 빚더미극단 대표자리 묵묵히 떠안고 남은 선배, 후배들 뒷바라지 끝에 서른일곱에 식도 못 올린 늦은 결혼을 했다. ....그리고 이제 마흔 셋! 모진 암 투병 끝에 가픈 숨을 조용히 거두었다. ......... 명숙아~ 명숙아~ 모진 고난에도 이 극단이 이만큼 견뎌 온 것은 너의 웃음과 숨어 몰래 뱉는 한숨 때문이었다. 오늘, 단원들 모두의 가슴에 너를 묻는다. 훌훌 털고 장흥에 편히 쉬어라. 보고싶어 부르면 언제고 달려가마. -2007년 6월 27일 못난 선배가.
단원 모두의 가슴에 너를 묻는다.배우 윤명숙! 별것도 아닌 말장난에 허리를 꺾어가며 자지러지게 웃어 제키다 문득, ‘우리... 왜 살지?’라며 뜬금없이 뱉어놓고 바라보면 어느새 눈길은 빌딩 너머로 가라앉는 해를 향해 있곤 했다. 여름 바닷가 포장마차 카바이트 불빛과 냉장고에서 막 꺼낸 차가운 소주와 담치 국물을 좋아하던 21살 나이에 극단새벽 막내로 입단했다. 희망보다 좌절을 먼저 배웠고 절망 속에서도 웃을 줄 아는 법을 터득해야 했던 나날들, 온 몸을 따갑게 싸고도는 최루탄 연기 아래서 공포와 분노를 감당 못해 울부짖으며 ‘독재타도’를 외치던 80년대를 거쳐 가난한 연극쟁이 더는 못 견디겠다고 하나둘 떠난 자리 아프고 저미게 메꾸며 빚더미극단 대표자리 묵묵히 떠안고 남은 선배, 후배들 뒷바라지 끝에 서른일곱에 식도 못 올린 늦은 결혼을 했다. ....그리고 이제 마흔 셋! 모진 암 투병 끝에 가픈 숨을 조용히 거두었다. ......... 명숙아~ 명숙아~ 모진 고난에도 이 극단이 이만큼 견뎌 온 것은 너의 웃음과 숨어 몰래 뱉는 한숨 때문이었다. 오늘, 단원들 모두의 가슴에 너를 묻는다. 훌훌 털고 장흥에 편히 쉬어라. 보고싶어 부르면 언제고 달려가마. -2007년 6월 27일 못난 선배가.
사람을 사랑한 배우 윤명숙
당신을 그리며...사람을 사랑한 배우 윤명숙
윤명숙 선배 1주기 영상입니다.
사람을 사랑한 배우 윤명숙윤명숙 선배 1주기 영상입니다.
형부랑 단원들이랑 술을 한잔했습니다.
영도 중리 자갈마당, 바로 앞에 마주선 바다를 보면서...
선배이모님이 하시는 곳이었는데, 참으로 맛나게 먹었습니다.
어진이가 낮동안 내내 놀고 갔다고 하더라구요.
이모님 반찬하시라고 파래를 잔뜩 모아놓고 간 어진이 마음이 그곳에 남아있었습니다.
어진이는 다리도 튼튼하고, 엉덩이도 토실토실해서 야무져 보입니다.
형부는 우리 만나면 선배얘기 참 많이해요. 우리 걱정도 많이 하지만...
선배 얘기 고만하지고 하지만, 늘 먼저 선배 얘기를 꺼내지요.
선배가 우리들을 잇는 마음의 다린데,
어찌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꼭 말로 하지 않아도 어느새 눈빛들은 그곳, 선배가 있는 곳에 닿아있는걸요.
어제는 아이들 이야기도 많이 나눴지요.
후배 민증이가 아픈게 안스러워 좋은 약재를 사놓고,
오늘 어진이랑 장흥으로 가셨습니다.
49재를 지내면서 이렇게 선배랑 있는것이 어느덧, 자연스러워져 있습니다.
익숙함의 두려움,
선배의 회향날이 다가오니 마음이 자꾸 조급해지는 자신을 느낍니다.
이게 아닌데... 이러구 있어서는 안되는데...
선배에게도, 함께 작업하는 이들에게도 그저,
잘할께요.로
속시원해지지 않는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지요.
답답함을 조금씩 줄여갈 수 있는
긴장과 호흡이 필요한것 같습니다.
입을 열기가 점점 힘들어져 선배에게도 오랫만에 글을 씁니다.
스스로 짊어진 무거운 짐을 잠시 내려놓고 싶은 까닭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음으로 만 쓰는 많은 사람들의 글들을 혹시, 다 헤아리고 계신건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