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에 짧게 썼던 글인데..
몇 자 안 되지만 여기에도 남깁니다.^^
http://blog.daum.net/sera-sh/11456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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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지문도가 또 다시 휘감은 안개를
시나브로 벗으며 일출을 맞이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것이 길할지 흉할지를 놓고 수런거렸다."
관객의 날 이벤트를 보고 어떤 연극을 볼지 고민이었는데, 사전에 조금 검색해보니 니르바나로 가는 길 은 무언가 '울림'이 있고 또 '성찰' 해볼 수 있는 연극이 될 것 같아서 티켓팅했다.
연극은 지문도라는 어느 섬에 사는 미자할머니, 사회복지사 나현숙, 그리고 황이장 세 사람의 갈등에서 시작한다. 오랜 친구인 옥이할머니의 죽음 이후 미자할머니는 자신의 마당 텃밭에 납골함을 두고 그 위로 작은 탑을 쌓으려 한다.
하지만 24명이 사는 이 작은 섬사람들은 모두가 기독교인들.
마을의 장로이자 이장이며, 옥이할머니의 조카이기도 한 황이장을 대표로 하는 마을 사람들은 미자할머니의 이런 행동이 탐탁치 않고 할머니를 요양원으로 보내려 한다.
반면 사회복지사인 나선생은 미자할머니를 곁에서 지켜보며
미자할머니를 소외시키는 마을 사람들에 대한 불만을 황이장에게 토로하고, 미자할머니의 진정한 뜻을 황이장에게 그리고 관객들에게 되묻는다.
세 사람의 대화를 중심으로 조금씩 조금씩 시간을 거슬러 가는 연극. 결국엔 중심 갈등의 보다 근원적인 이유인 할머니들의 비밀과 옥이할머니 죽음에 대한 미스테리에 다다르게 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언뜻보면 이 연극의 가장 문제가 되는 갈등은 세 사람 간의 인간관계의 문제, 또는 종교적 갈등으로 보인다.
하지만 연극은 그런 갈등 뿐 아니라 인간의 보다 내면적이고 심오한 갈등, 그리고 인간관계에 있어 소통이 없는 것이 어떤 이에게는 얼마나 큰 상처와 억압으로 다가올 수 있는지 말하고 있다.
각각 소수와 다수를 대표하는 할머니들과 섬사람들의 갈등 구조에서 소수인 할머니들 뿐 아니라, 이 곳에선 다수인 섬사람들 또한 결국은 다수의 육지 사람들에 대한 상처를 안고 있다.
서로에 대한 상처를 '비밀'로 하다가 두 할머니는 죽음에 까지 이르지만, 만약 서로가 서로의 상처를 알았다면 할머니들은 마을 사람들 속에 섞여 들어갈 수 있었을까? 아니면 또다른 어떤 문제로 사람들은 또 상처를 주고 받고 마는 것일까?
나는 여기서 또 한번 인간관계에 있어 진정한 소통의 어려움을 느꼈다.
'니르바나'는 처음 들었을 때 굉장히 생소한 말이지만 한자로 하면 아주 친숙한 말이다. 니르바나는 바로 '열반'을 이르는 말. 니르바나의 어원적 의미는 불길이 꺼진 상태(吹滅)라고 한다. '열반에 이른다'는 것은 때론 죽음을 의미할 때도 있고, 종교인이 성인의 경지에 이를 때를 말할 때도 있다.
어느 쪽이든 열반에 이르는 것은 조금의 희생이 필요한 것 같다. 죽음에는 삶에 대한 포기가, 성인의 경지에 이르려면 속세의 삶에 대한 희생이..
사실 그것은 희생이라기 보단 어떤 것을 '놓아버림','해탈'에 가깝다고도 생각된다. 두 할머니는 이 지문도에서의 삶을 놓아버림으로써 열반, 그 곳에서의 행복을 찾았기를...
이 연극은 '독후감연극'이라는 낯선 장르의 연극이다. 아돌 푸카드의『메카로 가는 길』이라는 책을 읽고 만들어진 연극이라고 하는데, 이 책에 나오는 세 사람의 등장인물을 우리나라의 역사적 상황과 특수성을 가미해서 새롭게 기획된 듯 하다.
지금 인간관계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거나, 뭔가 생각할 거리를 찾고 싶거나, 역사적 갈등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니르바나로 가는 길에서 내가 지금 서있는 길, 가야할 길의 또 하나의 갈림길을 찾게 될 수 있을 것이다.
몇 자 안 되지만 여기에도 남깁니다.^^
http://blog.daum.net/sera-sh/11456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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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지문도가 또 다시 휘감은 안개를
시나브로 벗으며 일출을 맞이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것이 길할지 흉할지를 놓고 수런거렸다."
관객의 날 이벤트를 보고 어떤 연극을 볼지 고민이었는데, 사전에 조금 검색해보니 니르바나로 가는 길 은 무언가 '울림'이 있고 또 '성찰' 해볼 수 있는 연극이 될 것 같아서 티켓팅했다.
연극은 지문도라는 어느 섬에 사는 미자할머니, 사회복지사 나현숙, 그리고 황이장 세 사람의 갈등에서 시작한다. 오랜 친구인 옥이할머니의 죽음 이후 미자할머니는 자신의 마당 텃밭에 납골함을 두고 그 위로 작은 탑을 쌓으려 한다.
하지만 24명이 사는 이 작은 섬사람들은 모두가 기독교인들.
마을의 장로이자 이장이며, 옥이할머니의 조카이기도 한 황이장을 대표로 하는 마을 사람들은 미자할머니의 이런 행동이 탐탁치 않고 할머니를 요양원으로 보내려 한다.
반면 사회복지사인 나선생은 미자할머니를 곁에서 지켜보며
미자할머니를 소외시키는 마을 사람들에 대한 불만을 황이장에게 토로하고, 미자할머니의 진정한 뜻을 황이장에게 그리고 관객들에게 되묻는다.
세 사람의 대화를 중심으로 조금씩 조금씩 시간을 거슬러 가는 연극. 결국엔 중심 갈등의 보다 근원적인 이유인 할머니들의 비밀과 옥이할머니 죽음에 대한 미스테리에 다다르게 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언뜻보면 이 연극의 가장 문제가 되는 갈등은 세 사람 간의 인간관계의 문제, 또는 종교적 갈등으로 보인다.
하지만 연극은 그런 갈등 뿐 아니라 인간의 보다 내면적이고 심오한 갈등, 그리고 인간관계에 있어 소통이 없는 것이 어떤 이에게는 얼마나 큰 상처와 억압으로 다가올 수 있는지 말하고 있다.
각각 소수와 다수를 대표하는 할머니들과 섬사람들의 갈등 구조에서 소수인 할머니들 뿐 아니라, 이 곳에선 다수인 섬사람들 또한 결국은 다수의 육지 사람들에 대한 상처를 안고 있다.
서로에 대한 상처를 '비밀'로 하다가 두 할머니는 죽음에 까지 이르지만, 만약 서로가 서로의 상처를 알았다면 할머니들은 마을 사람들 속에 섞여 들어갈 수 있었을까? 아니면 또다른 어떤 문제로 사람들은 또 상처를 주고 받고 마는 것일까?
나는 여기서 또 한번 인간관계에 있어 진정한 소통의 어려움을 느꼈다.
'니르바나'는 처음 들었을 때 굉장히 생소한 말이지만 한자로 하면 아주 친숙한 말이다. 니르바나는 바로 '열반'을 이르는 말. 니르바나의 어원적 의미는 불길이 꺼진 상태(吹滅)라고 한다. '열반에 이른다'는 것은 때론 죽음을 의미할 때도 있고, 종교인이 성인의 경지에 이를 때를 말할 때도 있다.
어느 쪽이든 열반에 이르는 것은 조금의 희생이 필요한 것 같다. 죽음에는 삶에 대한 포기가, 성인의 경지에 이르려면 속세의 삶에 대한 희생이..
사실 그것은 희생이라기 보단 어떤 것을 '놓아버림','해탈'에 가깝다고도 생각된다. 두 할머니는 이 지문도에서의 삶을 놓아버림으로써 열반, 그 곳에서의 행복을 찾았기를...
이 연극은 '독후감연극'이라는 낯선 장르의 연극이다. 아돌 푸카드의『메카로 가는 길』이라는 책을 읽고 만들어진 연극이라고 하는데, 이 책에 나오는 세 사람의 등장인물을 우리나라의 역사적 상황과 특수성을 가미해서 새롭게 기획된 듯 하다.
지금 인간관계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거나, 뭔가 생각할 거리를 찾고 싶거나, 역사적 갈등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니르바나로 가는 길에서 내가 지금 서있는 길, 가야할 길의 또 하나의 갈림길을 찾게 될 수 있을 것이다.